그룹명/현대시조

봄의 수인 / 시조시인 : 정완영

너른바위 2012. 11. 23. 12:13

채춘보 (採春譜)- 봄의 수인 / 시조시인 : 정완영


까마득 겨울을 살고
볕살 속에 나와 서니

나는 봉발(蓬髮)의 수인(囚人)
이 불사의 죄값으로

한 가슴 벅찬 새 봄을
외려 선사 받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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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과 감상>


첫시집 <채춘보>의 연작시 중 한 편인 "봄의 수인"은
평시조 한 수 안에 몇 수 이상의 뜻을 담아낸 행간의보폭과
사려의 깊이가 우물같은 최고의 궐작이다.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길이 남을 작품으로 자랑스럽기
한량없다. 혹독한 겨울 속에 갇혀 있던 "나"를 시적 화자는
죄인으로 비유한다. 하지만 자연 앞에서 죄 짓지 않는 자가
어디 있으랴!! 온 천지 모든 미물까지 인과에 얽허 먹고
먹히며 살아간다. 어디 그 뿐이랴. 온 세상 것들을 뜨겁게
살찌우는 여름을 지나 가을이면 열매나 씨앗을 갈무리
하면서 자연의 것들을 거두어 들인다.
모든 것을 빼앗긴 자연은 겨울이라는 냉혹한 형벌을
가하지만, 봄이 되면 만물은 다시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단단한 죽음의 씨앗에서 봉두난발의 푸른 새싹들이
머리를 들고 일제히 일어선다.
그 불사의 죄값은 무엇인가? 그런데 자연은 한 가슴 벅찬
볕살을 선사한다. 초장과 중장에서의 모든 갈등은 종장에서
온 천지를 감싸안는 자연의 광대함으로 화해하게 된다.
초.중장으로 이어지던 의미구조가 종장에서 전환 되면서
마무리되는 평시조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