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현대시조

산이 나를 따라와서 / 정완영 시인

너른바위 2012. 11. 23. 12:10

산이 나를 따라와서 / 정완영 시인


棟華寺 갔다 오는 길에 山이 나를 따라와서

도랑물만한 피로를 이끌고 들어선 茶집

따끈히 끓여 주는 茶가 丹楓 만큼 곱고 밝다


산이 좋아 눈을 감으신 부처님 그 無量感

머리에 서리를 헤며 귀로 외는 楓岳 소리여

어스름 앉는 黃昏도 허전한 정 좋아라

친구여, 우리 손 들어 昨滅하는 이 하루도

천지가 짓는 일들의 풀잎만한 몸짓 아닌가

다음 날 雪晴의 銀嶺을 다시 뵈려 옵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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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과 감상>
사람은 늙었지만 詩는 어립니다. 오늘도 3장6구 속에서 헤메고 있을뿐 아직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시인의 한마디가 가뭇하게 울려온다.
백수 정완영 시인의 세계로 산그림자 되어 따라가 보자.

약력 :1919년 경북 금릉 출신, 아호는 白水, 1946년 동인지 <오동> 발간
196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해바라기> 당선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조국>당선
1965년 시조시인협회 부회장
1979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위원장
1992년 한국 시조시인협회 회장
저서 : <시조 창작법> <고시조 감상> <시조산책> < 채춘보> <산이 나를 따라와서>
<꽃가지를 흔들듯이> <백수시선> < 連과 바람> <蘭보다 푸른돌 > <백수산고>
<오동잎 그늘에 서서> <나뷔야 청산 가자> <고희기념 시화집> 등

백수 정완영 翁의 시세계를 따라가면 누구나그의 시에 취하게 되어 무언삼매에 든
시인이 된다. 말로만 쓰는 시가 아닌 말과 말의 행간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둔 시인의
시정신에 흠몰되어 버린다. 표제 <산이 따라와서>는 산산책을 끝내고 차집에서 잠시
피로한 육신을 찻잔속에 담아놓고 자연의 산색을 회상하며 차 한잔과 단풍색이 어우려
지는 시인의 심상 이 다향처럼 피어난다. 정형시 시조는 45字 안팎이지만 그 행간에
숨어 있는 수는 무궁무진 하고 변화무쌍하다. 이런 수를 함축해 내기 위해서는 온갖

탐욕과 망상을 버리는 과정이 선행 되어야 한다. 마치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번뇌를
버리고 또 없애는 수행자처럼 시인도 각고의 수행을 통하여 함축적인 시를 탄생 시킨다.
이렇게 탄생한 한편의 시는 읽는이에 따라 각자의 화두가 되는 것이다.
"문지방에 드리운 산 그림자 아무리 쫓아도 안나가고, 마당에 드리운 달 그림자 아무리
비로 쓸어도 없어지지 않읍니다."